40도 마법 펼쳐지는 도시인의 아지트, 위스키바[하수정의 티타임]

입력 2023-03-02 11:51   수정 2023-03-27 08:31


오후 4시. 햇볕이 감싸고 있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 골목. 환한 유리창을 낸 한옥 위스키 바 '공간'의 문이 열리자 마자, 하나 둘 손님이 들어왔다. 금새 10여개의 자리가 찼다. 이들은 왜 해가 지기도 전 위스키바를 찾아왔을까.

스니커즈에 후드티를 입고 알코올 도수 40도의 위스키 한 잔을 즐기던 20대 여성은 이렇게 답했다. "위스키는 멋진 술이잖아요. 나에게 선물하는 한 잔의 사치이자 위로예요."

이들에게 위스키는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속 니콜라스 케이지가 심연에서 허우적대며 들이켰던 중독자의 술이 아니다. 동경과 위안이 담긴 청춘의 술이다.
○한 잔의 위로 건네는 도시인의 아지트

30대 회사원 천유빈 씨는 서울 곳곳의 특색있는 위스키바를 찾아다닌다. 수 백가지 싱글 몰트 위스키의 맛과 향이 이색적인 공간과 조합해 만들어 내는 다양성을 즐긴다. 청담 서촌 한남 연남 여의도 용산 등 지역마다 각양각색의 위스키바들은 그렇게 '도시인의 아지트'로 자리잡고 있다.

강남구 도산대로에 위치한 '르챔버'는 10년 가까이 클래식한 위스키바의 명맥을 이어왔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바텐더 대회 ‘월드 클래스’의 한국 대표 출신들이 2014년 오픈한 바다. 첫 방문이라면 적잖이 당황할 수 있다. 입구의 문이 책장으로 굳게 닫혀져 있어서다. 비밀의 열쇠인 책 한 권을 누르면 문이 열리고, 그제서야 수 많은 위스키가 진열된 백바와 반짝이는 샹들리에를 마주하게 된다.

르챔버와 같이 공간을 감춘 스피크이지(speakeasy)바는 위스키바를 찾는 또 다른 재미다. 스피크이지바는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는 은밀한 장소다. 간판이 없고 출입구는 숨겨져 있다. 1920~30년대 미국 금주법 시대에 생긴 무허가 주점이나 주류 밀매점을 일컫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명동 '숙희'도 애주가들이 즐겨찾는 스피크이지바다. 입구로 통하는 복도 끝 앤티크한 자개장 근처엔 거울 속 공간으로 들어가는 버튼이 숨겨져있다. 양주를 팔지만 한국의 멋과 맛을 입혔다. 한국과 일본에서 바텐더 경력을 쌓은 이수원 숙희 대표는 어머니가 그린 민화와 할머니의 서예 작품을 위스키바에 걸었다. 뉴욕에도 한국 스타일을 살린 숙희를 낼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서울옥션 경매 최고가인 5억원의 낙찰 기록을 썼던 '발베니 DCS 컴펜디엄' 풀세트 25병을 휩쓸어 간 위스키바가 있다. 2030세대 네 명의 청년들이 대표로 있는 강남구 신사동 '바 테제'다. 젊은 사장이 운영하는 바라고 해서 가볍게 매장을 들어섰다가, 메뉴판를 보면 혀를 내두른다. 국내에서 만나기 어려운 '더 라스트드랍' 한정판 시리즈와 '버번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BTAC 조지티스태그 컬렉션을 확보하고 있다.

월드클래스 임병진 바텐더의 서촌 한옥 위스키바 '바 참', 개화기 경성 분위기의 한남동 '소코바', 12개 로마글자로 출입을 알려주는 비밀스러운 청담 '트웰브', 논현동 영동시장 흑염소집을 개조한 '장생건강원 바' 등도 애주가들이 손에 꼽는 위스키바다.
○'스코츠맨'처럼 위스키 먹는 법
위스키바는 개인의 취향을 존중한다. 요즘 바에 가면, '골든블루'나 '임페리얼' 같은 블랜디드 위스키를 맥주에 섞은 폭탄주를 파도타기하며 한번에 털어 넣는 무리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한 곳의 증류소에서 맥아를 원료로 만든 '싱글 몰트 위스키'나 다양한 칵테일을 취향에 맞게 한 두 잔씩 즐기는 문화가 대세다.


위스키 전문가 강윤수 드링크인터내셔널 마케팅 팀장은 "위스키 초보일수록 바텐더와 가까이 위치한 바에 앉을 것"을 제안했다. 바텐더는 단순히 칵테일을 제조하는 사람이 아니다. 취향 전문가이자 스토리텔러다. 무궁무진한 주담화에 푹 빠질 기회다.

강 팀장은 1000여개가 넘는 위스키를 맛 봤다. 그것도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에서. 그는 세계 최대 규모의 몰트 위스키 박물관인 '스카치 위스키 익스피리언스'에서 최초의 한국인 직원이었다. 싱글 몰트 위스키 3대장 중 하나로 꼽히는 '발베니'의 브랜드 매니저를 지난 7년간 맡아 국내에서 위스키 '오픈런'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낸 마케팅 전문가이기도 하다.

스카치 위스키 중에선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나 하일랜드 지역에서 생산하는 '글렌피딕', '맥캘란', '글렌 모렌지', '로크로몬드' 등이 유명하다. 강한 스모키한 향에 도전하고 싶다면 남쪽의 작은 섬 아일레이 지역에서 생산한 '아드벡' 등을 시도해볼만 하다고 강 팀장은 전했다.

그에게 전해들은 스코틀랜드 현지인들의 위스키 음용법은 예상보다 단순했다. 취향에 맞춰 고른 1온스(28.3g)의 위스키를 컵에 담아 두 손으로 쥐고 위스키 온도를 서서히 상승시킨다. 숨어있던 아로마를 깨우고 음미한다. 곁들일 안주라면, 물 또는 맥주. 향을 촉진 시키기 위해 물 몇 방울을 위스키에 떨어뜨리거나 위스키 한모금에 맥주 한모금을 번갈아 마시기도 한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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